설립자 소개

PUNGSAENG HIGH SCHOOL

풍생학원 설립자 고 오천(梧天) 홍사풍(洪思豊) 선생

   풍생학원 설립자 고 오천(梧天) 홍사풍(洪思豊) 선생은 1928년 2월 7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서 부친 홍길유씨와 모친 정락승 여사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945년 경복중학교(현재 경복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대학(현재 서울대학교) 예과에 합격하였으나 기울어진 가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서산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러나 기업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기로 결심한 오천은 18세가 되던 1946년 교직을 사임하고 서울 돈암 시장에서 노점상을 시작하였다. 신의를 중시하는 성품과 뛰어난 추진력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노력한 결과, 오천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다.

   1952년 24세의 오천은 무역 회사인 주식회사 청구(靑丘)를 설립하였고, 1953년에는 사세를 확장하여 화공약품 전문업체인 주식회사 신광화공약품을 창립하였다.

   1957년 우리나라 건국 이후 최초의 통상사절단의 일원으로 동남아 8개국을 순방하게 된 오천은, 선물로 가져갔던 인삼의 인기가 대단한 점에 착안하여, 인삼 관련 제품 생산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주식회사 고려인삼 제품(주식회사 고제의 전신)을 1958년 12월 설립하게 된다. 주식회사 고려인삼 제품은 그의 추진력에 힘입어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여, 한국 최초로 인삼차를 개발하였고, 인삼류 제품을 외국에 수출하는 등 한국 인삼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무역을 하면서 기록한 거래 자료는 후에 대한민국 무역 통계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가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오천은 후세 교육에 남다른 관심과 열의를 갖고 "사람은 평생 배움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신념 하에, 1966년 교육의 불모지였던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탄리(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에 가난으로 진학을 못하는 불우한 학생들을 위하여 "인내, 전진"을 창학 이념으로 풍생학원을 설립하였다. 이어서 1967년 풍생중학교를, 1974년 풍생고등학교를 각각 세워 운영하였다. 오천은 몸소 창학 이념을 실천하여 사업을 하면서도 성균관대학교 상경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AMP: Advanced Management Program)을 이수하는 등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천은 "기업의 이익은 교육 사업을 통해 사회에 환원시켜야 한다"는 기업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1985년 주식회사 고제 주식의 20%에 해당하는 40만 주의 주식을 학교법인 풍생학원에 기증하였다. 이러한 오천의 교육에 대한 헌신적 노력에 대하여 국가는 1980년 대통령 표창, 1986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하여 그 공적을 치하하였다. 오천의 노력으로 풍생학원은 2023년 2월 현재 40,57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총 45학급 1,100여 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명실상부한 명문학원으로 성장하였다.

   일생을 교육 사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던 오천은 1990년 9월 3일 향년 62세의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오천은 "내가 죽으면 나의 장기는 이웃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고, 죽어서도 땅을 차지하는 것은 사치이니 화장을 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 유언에 따라 오천의 기증 가능한 안구는 필요한 사람에게 이식되어 새 빛이 되었고, 그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생전에 어려운 학생들에게 많은 장학금을 주고 학업을 독려하였으며 작고(作故)한 다음에도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던 오천의 뜻을 받들어 오천의 미망인인 최경훈 2대 이사장은 기금 2억 원의 사재를 출연하여 1996년 10월에 ‘오천장학회’를 설립하였다. 오천장학회는 2023년 3월 현재 625명의 장학생을 배출하여, 가난 때문에 공부를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오늘날 풍생학원이 명문 사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오천이 기업 이윤을 아낌없이 인재 양성에 투자하는 확고한 신념과 실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오천은 자신의 인생관, 경영관, 교육관을 몸소 실천하며 62년의 짧은 생을 살다가 갔지만 '풍생'이 존재하는 한 수많은 졸업생과 재학생, 그리고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